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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1-24 13:33
12월 시모음
 글쓴이 : 조경자
조회 : 9  

12월에 관한 시 모음

 

 

 

 12월의 독백

남은 달력 한 장이
작은 바람에도 팔랑거리는 세월인데
한 해를 채웠다는 가슴은 내놓을 게 없습니다.

욕심을 버리자고 다잡은 마음이었는데
손 하나는 펼치면서 뒤에 감춘 손은
꼭 쥐고 있는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비우면 채워지는 이치를 이젠 어렴풋이 알련만
한 치 앞도 모르는 숙맥이 되어
또 누굴 원망하며 미워합니다.

돌려보면 아쉬운 필름만이 허공에 돌고
다시 잡으려 손을 내밀어 봐도
기약의 언질도 받지 못한 채 빈손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해마다 이맘때쯤 텅 빈 가슴을 또 드러내어도
내년에는 더 나을 것 같은 마음이 드는데 어쩝니까?
(오광수·시인, 1953-)

 

 
  12월 어느 오후

덜렁 달력 한 장
달랑 까치 밥 하나
펄렁 상수리 낙엽 한 잎
썰렁 저녁 찬바람
뭉클 저미는 그리움
(손석철·시인, 1953-)



 

 

 
12월

잊혀질 날들이
벌써 그립습니다
따뜻한 차 한 잔이
자꾸 생각납니다
상투적인 인사치레를
먼저 건네게 됩니다
암담한 터널을 지나야 할
우리 모두가
대견스러울 뿐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아이들을 꼭 품고 싶습니다
또 다른 12월입니다
(임영준·시인, 부산 출생)


 

 

 

 12월은

사랑의 종
시린 가슴 녹여 줄
따뜻한 정이었음 좋겠다.

그늘진 곳에 어둠을 밝혀 주는
등불이었음 좋겠다

딸랑딸랑 소리에
가슴을 열고
시린 손 꼭 잡아주는
따뜻한 손이었음 좋겠다

바람 불어 낙엽은 뒹구는데
당신의 사랑을
기다리는 허전한 가슴
(하영순·시인)

 

 


12월은

해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한 장 남은 달력 속에 만감이 교차한다.
정월 초하룻날 어떤 생각을 했으며 무엇을 설계했을까
지나고 보면 해 놓은 일은
아무것도 없고 누에 뽕잎 갉아먹듯
시간만 축내고 앙상한 줄기만 남았다

죄인이다 시간을 허비한 죄인
얼마나 귀중한 시간이냐
보석에 비하랴
금 쪽에 비하랴

손에든 귀물을 놓쳐 버린 듯
허전한 마음
되돌이로 돌아올 수 없는
강물처럼
흘러버린 시간들이 가시 되어 늑골 밑을 찌른다.

천년 바위처럼 세월에 이끼 옷이나 입히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문틈으로 찾아드는 바람이 차다
서럽다!
서럽다 못해 쓰리다
어제란 명제는 영영 돌아올 수 없는가?
(하영순·시인)


 

 

 12월

한 해를 조용히 접을 준비를 하며
달력 한 장이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며칠 후면 세상 밖으로
사라질 운명이기에 더욱 게슴츠레하고
홀아비처럼 쓸쓸히 보인다

다사다난이란 단어를 꼬깃꼬깃
가슴속에 접어놓고
아수라장 같은
별종들의 모습을 목격도 하고
작고 굵은 사건 사고의 연속을
앵글에 잡아두기도 하며
허기처럼 길고 소가죽처럼 질긴
시간을 잘 견디어 왔다

애환이 많은 시간일수록
보내기가 서운한 것일까
아니면 익숙했던 환경을
쉬이 버리기가 아쉬운 것일까

파르르 떨고 있는 우수에 찬 달력 한 장

거미처럼 벽에 바짝 달라붙은 채
병술년에서 정해년으로
바통 넘겨 줄 준비하는 12월 초하루
(반기룡·시인)


 

 

 12월 중턱에서

몸보다 마음이 더 급한 12월, 마지막 달
달려온 지난 길을 조용히 뒤돌아보며
한 해를 정리해보는 결산의 달
무엇을 얻었고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누구를 사랑했고
누구를 미워하지는 않았는지
이해할 자를 이해했고
오해를 풀지 못한 것은 없는지
힘써 벌어들인 것은 얼마이고
그 가운데서 얼마나 적선을 했는지
지은 죄는 모두 기억났고
기억난 죄는 다 회개하였는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고
최선을 다한 일에 만족하고 있는지
무의식중 상처를 준 이웃은 없고
헐벗은 자를 외면하지는 않았는지
잊어야 할 것은 기억하고 있고
꼭 기억해야할 일을 잊고 있지는 않는지

이런 저런 일들을 머리 속에 그리는데
12월의 꽃 포인세티아
낯을 붉히며 고개를 끄떡이고 있다
(오정방·미국거주 시인, 1941-)


 
 
  12월의 단상

저기 벌거벗은 가지 끝에

삶에 지쳐
넋 나간 한 사람
걸려 있고

숭숭 털 빠진
까치가 걸터앉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참새는 조잘거리고

지나던 바람은
쯧쯧,
혀차며 흘겨보는데

추위에 떨던 고양이 한 마리
낡은 발톱으로 기지개 편다.
(구경애·시인, 1961-) 



 


 12월

올 데까지 왔구나
막다른 골목
피곤한 사나이가 홀로 서 있다

훤칠한 키에 창백한 얼굴
이따금 무엇엔가 쫓기듯
시계를 자주 보는 사나이
외투깃을 세우며 서성거린다

꽁꽁 얼어붙은 천지엔
하얀 자막처럼 눈이 내리고
허둥지둥 막을 내린 드라마
올해도 나는 단역이었지
뼈빠지게 일하고 세금 잘 내는

뒤돌아보지 말자
더러는 잊고
더러는 여기까지 함께 온
사랑이며 증오는
이쯤에서 매듭을 짓자

새로운 출발을 위해
입김을 불며 얼룩을 닦듯
온갖 애증을 지우고 가자
이 춥고 긴 여백 위에
이만 총총 마침표 찍고.
(임영조·시인, 1943-)

 


 


 12월의 공허

남은 달력 한 장
짐짓 무엇으로 살아왔냐고
되물어 보지만
돌아보는 시간엔
숙맥 같은 그림자 하나만
덩그러니 서 있고

비워야 채워진다는 진실을
알고도 못함인지
모르고 못함인지
끝끝내 비워내지 못한 아둔함으로
채우려는 욕심만 열 보따리 움켜쥡니다

내 안에 웅크린 욕망의 응어리는
계란 노른자위처럼 선명하고
뭉개도 뭉그러지지 않을
묵은 상념의 찌꺼기 아롱지는
12월의 공허

작년 같은 올 한 해가
죽음보다 진한 공허로
벗겨진 이마 위를 지나갑니다.
(오경택·교사 시인)

 

 


 12월

불꽃처럼 남김없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스스로 선택한 어둠을 위해서
마지막 그 빛이 꺼질 때,

유성처럼 소리 없이 이 지상에 깊이 잠든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허무를 위해서 꿈이
찬란하게 무너져 내릴 때,

젊은 날을 쓸쓸히 돌이키는 눈이여,
안쓰러 마라.
생애의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사랑은 성숙하는 것.

화안히 밝아 오는 어둠 속으로
시간의 마지막 심지가 연소할 때,
눈 떠라,
절망의 그 빛나는 눈.
(오세영·시인, 1942-)


 12월의 기도

마지막 달력을 벽에 겁니다.

얼굴에 잔주름 늘어나고
흰 머리카락이 더 많이 섞이고
마음도 많이 낡아져가며
무사히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

한 치 앞도 모른다는 세상살이
일 초의 건너뜀도 용서치 않고
또박또박 품고 온 발자국의 무게
여기다 풀어놓습니다.

재 얼굴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는
지천명으로 가는 마지막 한 달은
숨이 찹니다.

겨울 바람 앞에도
붉은 입술 감추지 못하는 장미처럼
질기게도 허욕을 쫓는 어리석은 나를
묵묵히 지켜보아 주는 굵은 나무들에게
올해 마지막 반성문을 써 봅니다.

추종하는 신은 누구라고 이름짓지 않아도
어둠 타고 오는 아득한 별빛 같이
날마다 몸을 바꾸는 달빛 같이
때가 되면 이별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의 기도로 12월을 벽에 겁니다.
(목필균·시인)

 


 

*12월의 시* 

                     - 詩:이해인*

또 한 해가 가버린다고 한탄하며....... 우울해하기보다는
아직 남아 있는 시간들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시오.

한 해 동안 받은 우정과 사랑의 선물들
저를 힘들게 했던 슬픔까지도..... 선한 마음으로 봉헌하며
솔방울 그려진 감사카드 한장

사랑하는 이들에게 띄우고 싶은 12월
이제 또 살아야지요
해야 할 일들 곧잘 미루고

작은 약속을 소홀히 하며.......... 나에게 마음 닫아 걸었던
한 해의 잘못을 뉘우치며
겸손히 길을 가야 합니다.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제가
올해도 밉지만
후회는 깊이 하지 않으렵니다.

진정 오늘밖에 없는 것처럼.시간을 아켜 쓰고
모든 이를 용서하면 그것 자체가 행복일 텐데

이런 행복까지도 미루고 사는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십시오.

보고 듣고 말하는  것...너무 많아 멀미나는 세상에서
항상 깨어 살기 쉽지 않지만

눈은 순결하게 마음은 맑게 지니도록
고독해도 빛나는 노력을 계속하게 해주십시오.

12월엔 묵은 달력을 떼어내고
새 달력을 준비하며 조용히 말하렵니다.

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 날이여~
나를 키우는 데 모두가 필요한 .......고마운 시간들이여

 

                                                   

                                  

 

 

                      강 건너 간 노래           이육사

                              

                               섣달에도 보름께 달 밝은 밤

                               앞냇강 쨍쨍 얼어 조이던 밤에

                               내가 부른 노래는 강 건너갔소

 

                               강 건너 하늘 끝에 사막도 닿은 곳

                               내 노래는 제비같이 날어서 갔소

 

                               못 잊을 계집애 집조차 없다기에

                               가기는 갔지만 어린 날개 지치면

                               그만 어느 모랫불에 떨어져 타서 죽겠죠

 

                              사막은 끝없이 푸른 하늘이 덮여

                              눈물 먹은 별들이 조상 오는 밤

 

                              밤은 옛일을 무지개보다 곱게 짜내나니

                              한 가락 여기 두고 또 한 가락 어데멘가

                              내가 부른 노래는 그 밤에 강 건너갔소

 

 

                 

                                        카나모리 사이지 (일본)

 

 

       다시 성탄절에            홍윤숙

 

내가 어렸을 때

12월, 성탄절은 눈이 내리고

눈길 걸어 산타할아버지 오시는 밤

머리맡에 양말 걸어놓고

나비잠 들면

별은 창마다 보석을 깔고

할아버지 굴뚝 타고 몰래 오셨지

 

지금은 산타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그 아들 2세 산타 아들이

백화점 대문마다

승용차 타고 오시지만

금테 안경 번쩍이며

에스컬레이터로 오시지만

꽃무늬 포장지에 사랑의 등급 매겨

이름 높은 순서대로 배급도 하시지만

 

이런 밤

홀로 2천 년 전 그날대로 오시는

예수

어느 큰길 차도에 발묶여 계신가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너 어찌 나를 저버리는가

이 세상 끝에서도 잊지 못하는

내 사랑 이리 아프게 하는가

몰래 몰래 숨어서

울고 계신가 

 

 

         

 

 

 

     동지  김영산

 

팥죽을 쑤다 어머니는 우신다

마당가에 눈이 쌓여 회붐한 저녁나절

시장한 식구들이 안방에 모여앉아

짧은 해처럼 가버린 언니를 생각한다

동생들 학비와 무능한 아비의 약값과 70년대 말

쪼든 양심을 위해

십년이 지나도록 구멍난 생계를 뜨게질하지 못한

딸들을 위해

긴긴밤 무덤들 위에 목화송이 흰 이불을 덮어주기 위해

 

 

             

동지         조용미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

    우레가 땅 속에서

  가만히 때를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비익총에 든 두 사람의 뼈는 포개어져 있을까요

 생을 거듭한 지금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붉고 노랗고 창백한 흰 달에 이끌려

                                    

나는 언제까지고 들길을 헤매 다니지요

 

     사랑이나 슬픔보다

    더 느리게 지나가는 권태로 색색의 수를 놓는 밤입니다

 

    하늘과 땅만 자꾸 새로워지는 날

    영생을 누리려 우레가 땅을 가르고 나오는

    적막한 우주의 한 순간입니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황진이

                          

                           冬至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어

                           春風 니블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바밍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동짓달 기나긴 밤의 한가운데를 베어내여

                                봄바람처럼 따뜻한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정든 임이 오시는 밤에 굽이굽이 펴리라 

 

 

 

                         동지 다음날         전동균

                                       1

                                       누가 다녀갔는지, 이른 아침

                                       눈 위에 찍혀 있는

                                       낯선 발자국

 

                                       길 잘못 든 날짐승 같기도 하고

                                       바람이 지나간 흔적 같기도 한

 

                                       그 발자국은

                                       뒷마당을 조심조심 가로질러 와

                                       문 앞에서 한참 서성대다

                                       어디론가 문득

                                       사라졌다

 

                                       2

                                       어머니 떠나가신 뒤, 몇 해 동안

                                       풋감 하나 열지 않는 감나무 위로

                                       처음 보는 얼굴의 하늘이

                                       지나가고 있다

 

                                       죽음이

                                       삶을 부르듯 낮고

                                       고요하게

 

                                        ㅡ 어디 아픈 데는 없는가?

                                        ㅡ 밥은 굶지 않는가?

                                        ㅡ 아이들은 잘 크는가?

 

          

 

 

   성탄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