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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예비역부사관총연합회 부사관호국영웅입니다.

 
작성일 : 19-02-03 13:57
하사 김문헌 (울산)
 글쓴이 : 부총연
조회 : 10  

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김문헌 (金文憲)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145573
  • 전몰일자 : 1951-05-17

공훈사항

김문헌 하사는 1927년 6월1일 경상남도 울산군 하상면 연암리에서 출생, 1950년 9월3일 육군에 입대하여 제7사단에서 복무하였다.
제7사단은 1949년 1월7일 제1, 제9, 제19연대를 기간으로 서울 용산에서 창설된 제7여단을 모체로 태동하였다. 제7여단은 2월1일 수도여단으로 개칭된 후 5월12일 육일명 제15호에 의거 수도사단으로 승격되었고, 6월20일 육일명 제17호에 의거 제7사단으로 재개칭되어 제1연대를 동두천 정면에, 제9연대를 포천 정면에 배치해 의정부지구 38도선 경비임무를 수행하였다.
육군본부는 6ㆍ25전쟁이 발발하자 재경부대를 가평 지역과 동두천 서남쪽 은현리 및 포천 송우리 지역에 증원,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였다. 제7사단 역시 동두천 부근의 보산리까지 추진되어 준비된 진지에서 적 1개 대대를 집중포격으로 격멸하는 등 전공을 세우며 1950년 6월25일부터 27일까지 의정부와 창동지구 전투를 수행하였다.
사단은 1950년 7월5일 한강방어전투와 시흥지구전투를 수행한 후 해체되었다가 7월10일 전라북도 전주에서 학도병을 보충 받아 제3, 제9연대로 재창설되어 7월14일 민부대로 개칭되었다. 민부대는 전주, 남원, 운봉, 함양 등지에서 북한군 제6사단의 서해안지구 진출을 지연시킨 후 포항지구전투에 참가했다. 사단은 8월 20일 국일명 제49호에 의거 대구에서 제3, 제5, 제8연대를 기간으로 재편성되어 8월21일부터 30일까지 의흥지구 방어전투를 수행하였으며, 이에 앞서 예하의 제3연대는 포항전투에 참여하였다. 이어 9월4일부터 13일까지 영천지구 전투를 전개하였다. 이 전투에서 사단은 북한군 제8사단과 제15사단을 맞아 불리한 전세를 만회하고 반격의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대통령 부대표창을 수상하였다.
동년 9월16일 제1차 반격작전 지시를 받은 사단은 경주-안동으로 이동하였고, 다시 양평(10월1일)-포천 양문리(10월8일)-평강(10월12일)-평남 상동(10월19일)을 경유 계속 북진하였으며, 한편 제8연대는 10월 18일부터 10월20일 까지 평양 탈환작전에 참가하였다. 사단은 북진을 계속하여 11월3일 구장동까지 진출했으나, 6.25전쟁에 개입한 중공군의 제1차 공세로 청천강 남안으로 후퇴하여 11월5일부터 18일까지 청천강에서 방어작전을 실시하였다. 11월24일부터 27일까지 덕천지구 전투를 전개한 사단은 수안-연천-원주-영월선까지 철수, 전선을 정비하고 반격작전의 일환책으로 현 전선고수에 임하였다.
킬러작전에 참여한 사단은 1951년 1월7일부터 2월6일까지 영월지구 전투에서 1,900여명의 적을 사살하고 900여명을 포로로 하는 대전과를 통해 영월을 확보하였다. 그리고 제2차 반격작전 지시에 따라 백운산을 탈환하고 3월5일 인제 관대리로 진출하여 5월16일부터 춘천 및 소양강지구에서 중공군 4개 사단 및 북한군 2개 사단의 공격을 격퇴하였다.
김문헌 하사는 제7사단이 춘천 및 소양강지구에서 중공군 4개 사단 및 북한군 2개 사단의 공격을 격퇴하는 저투에서 1951년 5월17일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03-1-216)에 봉안하고 있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번호 052-ㄷ-055)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