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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예비역부사관총연합회 부사관호국영웅입니다.

 
작성일 : 19-01-06 14:48
일등중사 김병훈 (옥구)
 글쓴이 : 부총연
조회 : 9  

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김병훈(한자미상)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632705
  • 전몰일자 : 1953-06-29

공훈사항

김병훈 일등중사는 1928년 11월 17일 전라북도 옥구군 서은면 용마동에서 태어나, 육군에 입대하여 제 7사단 8연대에서 복무하였다.
사단은 한강선 방어전투와 시흥지구전투를 수행한 후, 1950년 7월 5일 해체되었다가 7월 10일 전라북도 전주에서 학도병을 보충 받아 제3, 9연대로 재창설되어 7월 14일 민부대로 개칭되었다. 이후 8월 20일 국일명 제49호에 의거 대구에서 제3, 5, 8연대를 기간으로 제7사단이 재편성되어 8월 21일부터 30일까지 의흥지구 방어전투를 수행하였고, 이에 앞서 예하의 제3연대는 포항전투에 참가하였다. 이어 9월 4일부터 13일까지 영천지구 전투를 전개하였다. 이 전투에서 사단은 북한군 제8사단과 제15사단을 맞아 불리한 전세를 만회하고 반격의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대통령 부대표창을 받았다.
9월 16일 제1차 반격작전 지시를 받은 사단은 경주-안동으로 이동한 후, 북진하여 양평(10월 1일)-포천, 양문리(10월 8일)-평강(10월 12일)-평남, 상동(10월 19일)을 탈환하였고, 10월 20일에는 예하 제8연대가 대동강을 도하하여 평양에 입성하였다.
1950년 11월 24일 유엔군의 크리스마스 공세에 이은 11월 25일의 중공군의 제2차공세로 인하여 11월 24일부터 27일까지 덕천지구에서 전투를 전개한 사단은 철수하여 홍천에서 정비한 후 12월 15일 춘천으로 이동하였다.
1951년 2월 5일 개시된 라운드업작전에서 사단은 평창에서 공격을 개시하여 창동리(원주-강릉 도로상) 남쪽까지 진격하였으나 2월 11일 개시된 중공군의 제4차공세에 밀려 18일에는 영월까지 철수하였다. 킬러작전(1951. 2. 21~3. 6)에 참가한 사단은 2월 21일 영월에서 공격을 개시하여 평창을 거쳐 3월 초 창동리까지 진격하였다.
사단은 5월 16일 개시된 중공군의 제5차 2단계 춘계공세에 맞서 춘천 및 소양강지구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격전을 벌이다가 철수하였다.
다시 반격한 사단은 미 해병사단으로부터 화천저수지 남안 진지를 인수하고 6월 8일부터 757고지 탈환을 위한 화천지구 전투와 901고지 탈환을 위한 양구군 방산면 송현리지구 전투를 전개하여 고지를 탈환하는 전공을 세웠다.
사단은 1952년 2월부터 이들 고지를 빼앗기 위한 적의 공세를 격퇴하고, 11월 15일 미 제25사단에 현 전선을 인계하고 부대정비와 훈련에 돌입하였다.
휴전을 한 달 여 앞둔 1953년 6월 25일 사단은 양구 북쪽 983고지(선우고지) 쟁탈전을 전개하여 탈환하였고, 휴전 직전인 7월 19일부터는 화천 북쪽 425고지와 406고지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대미를 장식하였다.
김병훈 일등중사는 1953년 6월 29일 부여된 작전임무를 훌륭히 수행하고, 강원도 양구지역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25-5-206)에 봉안하여 그 영령을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