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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예비역부사관총연합회 부사관호국영웅입니다.

 
작성일 : 19-01-06 14:47
이등상사 김병휴 (제주)
 글쓴이 : 부총연
조회 : 8  

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김병휴(金炳休)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1205856
  • 전몰일자 : 1951-04-23

공훈사항

김병휴 이등상사는 1920년 12월 22일 제주도 북제주군 구좌읍 세화리에서 출생하여, 1949년 3월 10일 육군에 입대한 후 제6사단에서 복무하였다.
제6사단은 6ㆍ25전쟁이 발발하자 예비인 제19연대를 즉각 춘천으로 투입하여 춘천과 홍천 지구에서 6월 30일까지 북한군 제2사단과 제12사단의 남하를 성공적으로 저지하였고, 육군본부의 명령에 따라 횡성-충주로 철수하면서 지연전을 전개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국군의 한강 방어선이 붕괴된 후인 1950년 7월 5일부터 10일까지 사단은 음성 지구에서 적의 선두부대인 제15사단 제48연대를 궤멸시키는 대전과를 거둠으로써 제7연대 전 장병이 일 계급 특진하는 영예를 획득하였다. 이어 이화령과 문경 지구에서는 적 제1사단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해 상주로의 진출을 저지하였으며, 계속 지연전을 전개하면서 낙동강 방어선으로 철수하였다.
1950년 9월 16일부터 반격작전으로 전환한 사단은 충주-원주를 거쳐 10월 2일 춘천을 탈환하고 38선을 돌파하였다. 사단은 이어 화천-원산-성천-순천-개천-고장을 거쳐 한ㆍ만 국경으로 진격하여 패주하는 적 5,200여 명을 사살하고, 10월 26일 초산을 점령하여 역사적인 태극기 게양식을 거행하였다. 그러나 사단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퇴로가 차단되어 10월 29일 초산으로부터 철수를 단행하면서 대동강 방어전투와 순천(順川)지구 전투를 통해 적의 남진을 저지ㆍ지연시켰다. 그리고 평양-수안을 거쳐 12월 12일 동두천에 도착하여 제2차 38선 방어에 돌입하였으나, 12월 31일 중공군의 신정공세로 안성까지 후퇴하였다.
1951년 2월 8일부터 12일까지 514고지를 공격하여 점령한 사단은 다음날 여주-가평 방면으로의 총반격작전에 참가하여 4월 6일 캔자스 선을 확보하였고, 4월 22일 사창리지구에서 중공군 4개 사단과 방어전투를 전개하였다. 중공군의 제5차 춘계공세 당시 용문산 일대에 주저항선을 형성한 사단은 5월 18일부터 중공군 3개 사단의 공격을 받고 3일간의 전면방어로 적을 격퇴한 후, 후퇴하는 적을 추격하여 21,000여 명을 사살하고 2,500여 명을 생포하는 대전과를 거두었다.
김병휴 이등상사는 1951년 4월 23일, 사창리지구에서 공격해오는 중공군에 맞서 용전분투하다가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 28-5-103)에 봉안하고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43-ㅌ-073)에 그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