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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예비역부사관총연합회 부사관호국영웅입니다.

 
작성일 : 19-01-06 14:47
일등상사 김보기 (용인)
 글쓴이 : 부총연
조회 : 7  

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김보기(金保基)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상사
  • 군번 : 1102306
  • 전몰일자 : 1951-11-19

공훈사항

김보기 일등상사는 1929년 3월 10일 경기도 용인군 용인읍 호리 490번지에서 출생하여, 1946년 12월 20일 육군에 입대한 후 제11사단 9연대에서 복무하였다.
제11사단은 국일명 제54호에 의거 1950년 8월 27일 경북 영천에서 창설되었고, 삼랑진의 제6훈련소를 개편한 제20연대를 사단에 예속시켰다. 사단은 9월 25일 대구의 제9연대와 진해의 제13연대를 예속시키고 사령부를 대구로 이동하였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에 이은 반격작전 결과, 퇴로가 차단된 일부 북한군은 산악지역으로 도주하여 열차습격, 철도파괴, 양민납치 및 학살, 경찰관서 습격, 식량약탈 등 만행을 자행하며 후방을 교란하였다.
10월 1일 대구에서 남원으로 사령부를 이동시킨 사단은 제9연대를 지리산지구(진주)에, 제13연대를 전북지구(전주)에, 그리고 제20연대를 전남지구(광주)에 전개시켜 패잔병에 대한 토벌작전을 전개하였다.
사단은 각 연대를 전남북 및 경남북 일대의 공비출몰지역에 배치하고, 1951년 4월 6일까지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토벌작전을 전개한 결과 적 사살 1,600여 명, 포로 130여 명, 각종 화기 111점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사단은 1951년 4월 16일 강원도 양양으로 이동하여 제1군단에 배속되었고, 4월 22일 개시된 중공군의 제5차 1단계 춘계공세시 북한군의 공격을 받아 양양에서 주문진으로 철수하였다. 적의 공세가 종료된 후, 5월 7일부터 13일까지 설악산지구에서 북한군 제5군단 예하의 제12사단을 공격하여 수많은 전과를 올렸으나 5월 16일에 개시된 중공군의 제5차 제2단계 춘계공세로 인해 강릉으로 철수하였다.
사단 예하의 제20연대는 5월 19일부터 22일까지 대관령 일대에서 중공군 제92사단의 2개 연대로부터 포위공격을 받았으나 치열한 전투 끝에 이를 격퇴하고 포위망을 돌파하였다.
이후 사단은 건봉산으로 진격하여 주저항선을 구축하고 마달리 전투 등 수색작전을 전개하였으며, 8월 14일부터 22일까지 향로봉 북쪽의 주요 고지를 확보하기 위해 884고지 일대에 배치되어 있던 북한군 제45사단을 공격하여 격퇴하고 남강선으로 진출하였다. 이 전투에서 사단은 155㎜ 야포 사격에도 견딜 만큼 견고하게 진지를 구축하고 저항하는 적을 공격하는 동안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으나, 유엔군 예하 해군의 함포지원을 받으며 지속적인 공격을 가한 끝에 적 사살 1,200여 명과 수많은 무기를 노획하는 대전과를 거두었다.
사단은 군단의 전선조정계획에 따라 수도사단의 작전지역을 인수한 후 11월 20일부터 25일까지 고성 방면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월비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15사단을 공격하여 격퇴하였다.
김보기 일등상사는 1951년 11월 19일, 고성 부근 전초지역에서 적과 교전시 큰 공을 세우며 용전분투하다가 적의 흉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하였으며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 7362)에 봉안하고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73-ㄴ-071)에 그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