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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예비역부사관총연합회 부사관호국영웅입니다.

 
작성일 : 19-01-06 14:46
일등중사 김병일 (임실)
 글쓴이 : 부총연
조회 : 5  

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김병일 (金炳日)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745922
  • 전몰일자 : 1953-07-23

공훈사항

김병일 일등중사는 1935년12월2일 전라북도 임실군 금촌면 유정리에서 출생, 1951년 9월15일 육군에 입대하여 제7사단 8연대에서 복하였다.
제8연대는 1946년 4월1일 강원도 춘천에서 창설되어, 1950년 6월20일 서울 용산에 있는 수도경비사령부에 예속되어 6월25일 전쟁이 발발한 이 후, 많은 전투에서 용전분투 하였으며, 제7사단이 1950년 8월 20일 국일명 제49호에 의거 대구에서 제3, 5, 8연대를 기간으로 재편성될 때 제7사단으로 예속 되었다.
제7사단은 1950년 8월 20일 재편성된 후, 8월 21일부터 30일까지 의흥지구 방어전투를 수행하였고, 이에 앞서 예하의 제3연대는 포항전투에 참가하였다. 이어 9월 4일부터 13일까지 영천지구 전투를 전개하였다. 이 전투에서 사단은 북한군 제8사단과 제15사단을 맞아 불리한 전세를 만회하고 반격의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대통령 부대표창을 받았다.
9월 16일 제1차 반격작전 지시를 받은 사단은 경주-안동으로 이동하였고, 다시 양평(10월 1일)-포천, 양문리(10월 8일)-평강(10월 12일)-평남, 상동(10월 19일)으로 북진하여, 예하 제8연대가 10월 20일 대동강을 도하하여 평양에 입성하였다. 사단은 북진을 계속하여 11월 3일 구장동까지 진출했으나, 6ㆍ25전쟁에 개입한 중공군의 제1차공세로 청천강 남안으로 후퇴하여 11월 5일부터 18일까지 청천강에서 방어작전을 실시하였다.
1950년 11월 24일 유엔군의 크리스마스 공세에 이은 11월 25일의 중공군의 제2차공세로 인하여 11월 24일부터 27일까지 덕천지구에서 전투를 전개한 사단은 철수하여 홍천에서 정비한 후 12월 15일 춘천으로 이동하였다. 12월 31일 중공군의 제3차공세가 개시되자 사단은 춘천에서 홍천-횡성-원주를 거쳐 1951년 1월 7일에는 신림리에서 영월로 이동중 적과 격전을 치르고, 8일 영월 동남쪽에 방어진지를 편성하였다.
1951년 2월 5일 개시된 라운드작전에서 사단은 평창에서 공격을 개시하여 창동리(원주-강릉 도로상) 남쪽까지 진격하였으나 2월 11일 개시된 중공군의 제4차공세에 밀려 18일에는 영월까지 철수하였다. 킬러작전(1951. 2. 21~3. 6)에 참가한 사단은 2월 21일 영월에서 공격을 개시하여 평창을 거쳐 3월 초 창동리까지 진격하였다.
사단은 군단예비로 후방에서 공비소탕작전을 펼치다가 1951년 4월 22일 인제 원통지역으로 투입되어 제5사단의 작전지역을 인수한 후 중공군의 제5차 1단계 춘계공세에 철수하였다가, 다시 반격작전을 벌여 인제 남쪽 신풍리-남전리까지 진격하여 소양강에서 방어진지를 편성하였다.
사단은 5월 16일 개시된 중공군의 제5차 2단계 춘계공세에 맞서 춘천 및 소양강지구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격전을 벌이다가 철수하였다. 다시 반격한 사단은 미 해병사단으로부터 화천저수지 남안 진지를 인수하고 6월 8일부터 757고지 탈환을 위한 화천지구 전투와 901고지 탈환을 위한 송현리지구 전투를 전개하여 고지를 탈환하는 전공을 세웠다. 이어 9월 23일부터 26일까지 양구 북방의 백석산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여 적을 격퇴하였고, 11월과 12월에는 890고지와 1090고지를 탈환하는데 성공하였다.
사단은 1952년 2월부터 이들 고지를 빼앗기 위한 적의 공세를 격퇴하고 11월 15일 미 제25사단에 현 전선을 인계하고 부대정비와 훈련에 돌입하였다. 휴전을 한 달 여 앞둔 1953년 6월 25일 사단은 양구 북방 983고지(선우고지) 쟁탈전을 전개하여 탈환하였고, 휴전 직전인 7월 19일부터는 화천 북방 425고지와 406고지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대미를 장식하였다.
김병일 일등중사는 주요 전초진지 쟁탈전을 수행하던 기간 중 임무를 수행하다가 1953년 7월 23일 강원도 화천지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27-1-026)에 봉안하고 있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번호 054-ㄹ-100)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