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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예비역부사관총연합회 부사관호국영웅입니다.

 
작성일 : 19-01-06 14:46
특무상사 김병제
 글쓴이 : 부총연
조회 : 8  

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김병제 (한자미상)

  • 군별 : 육군
  • 계급 : 특무상사
  • 군번 : 2202903
  • 전몰일자 : 1951-03-12

공훈사항

김병제 특무상사는 (생년월일 및 출신지 미상) 육군에 입대하여 제8사단 10연대에서 복무하였다.
제8사단은 1949년 6월 20일 육본 일반명령 제26호에 의거 제6사단 예하의 제10연대와 제3연대 예하의 제2대대를 기간으로 강릉에서 창설되었다. 사단은 강릉 일대에서 38선 방어와 해안선 경계임무를 수행하던 중 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6월 25일부터 7월 1일까지 강릉지역에서 동해안을 따라 남하하는 북한군 제5사단과, 정동진 해안으로 상륙하여 남으로부터 협공을 가하는 북한군 제945육전대 및 임원진으로 침투한 제766부대 등 2개 사단 규모의 적을 맞아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였다. 이후 사단은 축차적인 철수작전을 전개한 후 낙동강 방어선을 형성하였다.
8월 1일 안동에서 철수하여 낙동강을 건너 의성에 도착한 사단은 8월 3일부터 의성지구전투를 실시하여 적의 진출을 13일이나 지연시켰고, 9월 2일부터 12일까지 영천전투를 실시하여 적을 격퇴하고 영천을 탈환함으로써 반격작전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1950년 9월 20일 반격으로 전환한 사단은 단양-동두천을 거쳐 10월 8일 초성리에서 38선을 돌파하고 9일 연천, 10일 철원, 11일 평강, 13일 이천을 점령하고, 14일 곡산으로 진격하여 18일 평양 동북 강동을 점령하였다.
평양을 탈환한 후 맥아더 장군이 국경선으로 총공격 명령을 하달하자, 사단은 10월 23일 덕천을 탈환하고, 24일 희천-강계 축선으로 진격을 개시하여 25일 구장동을 점령하였으나, 10월 25일 중공군의 제1차공세로 희천으로의 진격을 중지하고 구장동에서 중공군의 진격을 저지하고자 하였다. 11월 25일 개시된 중공군의 제2차공세 기간중 사단은 평남 덕천 및 영원 지역에서 중공군 제42군의 공격을 받고 방어전투를 전개한 후 철수하였다. 이후 사단은 신계를 거쳐 12월 5일 시변리에 도착하여 정비 후에 연천(12. 10)을 거쳐 12월 23일에는 춘천 동북쪽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였다.
춘천 부근에 있는 아군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하여 북한군이 12월 23일 홍천 방면으로 먼저 공격을 개시하자 치열한 전투 끝에 이를 격퇴하였으나, 잇따라 12월 31일 중공군의 신정공세가 전개되자 사단은 철수하여 1951년 1월 5일 원주-삼척간의 방어선을 점령하였다. 미 제10군단으로 배속이 전환된 사단은 원주에서 홍천 방면으로 반격을 실시하던 중 1951년 2월 4일부터 15일까지 횡성 북쪽에서 중공군 제40군 및 제66군과 치열한 전투 끝에 막대한 피해를 입고 제천을 거쳐 대구로 철수하여 재편성한 후 4월부터 5월까지 후방지역의 패잔병 및 공비 토벌임무를 수행하였다.
김병제 특무상사는 중공군의 침공으로 인하여 국군과 유엔군이 방어작전으로 전환한 후, 축차적으로 전면적인 지연작전을 실시한 후, 공방전을 수행하던 기간 중 임무를 수행하다가 1951년 3월12일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23-3-5)에 봉안하여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