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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예비역부사관총연합회 부사관호국영웅입니다.

 
작성일 : 18-12-02 20:02
일등중사 김인규 (부산)
 글쓴이 : 부총연
조회 : 5  

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김인규 (金仁圭)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633291
  • 전몰일자 : 1953-07-20

공훈사항

김인규 일등중사는 1928년 1월 16일 부산시 서구 동광동 5가에서 출생, 1951년 8월 3일 육군에 입대하여 제8사단 제21연대에서 복무하였다.
제8사단은 1949년 6월 20일 육본 일반명령 제26호에 의거 제6사단 예하의 제10연대와 제3연대 예하의 제2대대를 기간으로 강릉에서 창설되었다.
사단은 강릉 일대에서 38도선 방어와 해안선 경계임무를 수행하던 중 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6월 25일부터 7월 1일까지 강릉지역에서 2개 사단 규모의 적을 맞아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였다. 이후 사단은 축차적인 철수작전을 전개한 후 낙동강 방어선을 형성하였다. 9월 20일 반격으로 전환한 사단은 단양-동두천을 거쳐 10월 8일 초성리에서 38도선을 돌파하고 9일 연천, 10일 철원, 11일 평강, 13일 이천을 점령하고, 14일 곡산으로 진격하여 18일 평양 동북 강동을 점령하였다.
11월 25일 개시된 중공군의 제2차공세 기간 중 사단은 평남 덕천 및 영원 지역에서 중공군 제42군의 공격을 받고 방어전투를 실시한 후 27일 철수하였다. 이후 사단은 신계를 거쳐 12월 5일 시변리에 도착하여 정비 후에 연천(12. 10)을 거쳐 12월 23일에는 춘천 동북쪽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였다.
1951년 7월 사단은 원통 서화리 북쪽 노전평 지구의 제5사단 작전지역을 인수하고, 8월부터 10월까지 3차에 걸친 노전평지구 전투와 백석산(양구 방산) 전투를 실시하여 965고지, 854고지와 백석산을 점령하는 대대적인 전과를 거두었다.
1952년 10월 25일 수도사단과 교대하여 금성천 북쪽에 있는 수도고지ㆍ지형능선의 방어임무를 인수한 사단은 1953년 5월까지 방어지역에서 전초진지 쟁탈전을 전개하였다. 사단은 5월 27일부터 6월 4일까지 수도고지ㆍ지형능선에서 중공군 제67군의 공격을 받고 치열한 전투를 실시하였다. 중공군의 6월 대공세로 아이슬랜드 선에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한 사단은 7월 13일부터 금성지구 전투를 수행하였다.
이 금성전투에서, 국군 5개 사단(수도ㆍ5ㆍ6ㆍ8ㆍ11사단)은 7월 13일에 대대적인 중공군의 공격을 받고 금성 돌출부의 양견부가 돌파되었으며, 뒤이어 후방의 지휘소가 중공군의 기습을 받는 등 혼란이 야기됨으로써 국군은 금성천 남쪽의 백암산과 주파령, 적근산 부근으로 후퇴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 16일부터 국군 제2군단이 반격작전을 전개하여 미 제8군의 공격목표인 아이슬랜드 선으로 진출하였다. 이 전투 결과, 중공군은 약 40km 정면에서 평균 4km를 남하하여 금성천 북안의 주요 고지를 점령하게 되었으며, 국군은 아이슬랜드 선 전방의 전초선만을 확보한 상태에서 휴전을 맞게 되었다.
김인규 일등중사는 금성천 북안의 주요 고지에서 적과 치열한 전투를 수행하며 용전분투하였으나 안타깝게도 1953년 7월 20일 강원도 김화지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42-5-148)에 봉안하고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66-ㅊ-056)에 이름을 새겨 영령을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