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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예비역부사관총연합회 부사관호국영웅입니다.

 
작성일 : 18-12-02 20:01
일등중사 김인기 (서울)
 글쓴이 : 부총연
조회 : 6  

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김인기 (金仁基)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6501583
  • 전몰일자 : 1951-04-14

공훈사항

김인기 일등중사는 서울특별시 용산구에서 출생, 육군에 입대하여 제1사단에서 복무하였다.
1947년 12월 1일 서울 남산동에서 제1여단이 창설되었고, 1949년 5월 12일 경기도 고양군 수색에서 제1사단으로 승격되었다.
사단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 제1사단과 제6사단이 사단의 38도선 경계지역으로 침입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개성, 문산, 봉일천 일대에서 방어작전을 전개하였다. 사단은 임진강과 곡릉천의 천연장애물을 이용하여 적의 진출을 저지했으나 서울이 피탈됨에 따라 퇴로가 차단되어 행주나루 부근에서 한강을 도하하여 철수하였다.
1950년 7월 4일 수원 동북쪽 풍덕천에서 적을 격퇴하고, 조치원-청주-음성-문경을 거쳐 7월 31일 밤 함창 북서쪽에서 적과 접촉을 끊고 8월 1일 상주를 경유하여 낙동강을 도하한 후, 낙동리-왜관 지역에서 낙동강 방어선을 형성하였다.
사단은 낙동강 방어선에서 성공적으로 방어 임무를 수행하고 반격을 개시하여 9월 25일 낙동강을 도하하고, 청주-안성-고랑포를 거쳐 11일 38도선을 돌파하고 북진의 길에 나섰다. 10월 19일 선두로 평양에 입성한 사단은 청천강을 건너 한ㆍ중 국경선의 수풍발전소를 목표로 진격작전을 전개하던 10월 25일 운산 북쪽에서 중공군 제39군과 조우하여 1주일간의 사투 끝에 영변으로 철수하였다.
11월 24일 박천 일대에서 공격을 개시한 사단은 25일부터 태천에서 중공군과 격전을 치른 후 28일 청천강을 건너 철수하여 11월 30일 숙천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였으나, 12월 2일 다시 철수하여 12월 3일에는 평양 북쪽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였다. 12월 4일 평양에서 철수한 사단은 사리원-시변리를 거쳐 고랑포에서 임진강을 건너 12월 11일 동두천 서쪽 신산리에 도착하였다.
1950년 12월 31일 개시된 중공군의 제3차 공세에 맞서 사단은 격전을 벌였으나, 철수하여 1951년 1월 6일 안성에 도달한 후, 1월 30일부터 반격작전을 전개하여 안양-서울-임진강으로 진출하였다. 그러나 중공군의 제5차 공세기인 4월 20일 중공군 제63군 예하 3개 사단이 기습공격을 가해오자 사단은 서울 북방의 봉일천 일대에서 4월 30일까지 치열한 전투를 전개하였다.
김인기 일등중사는 반격작전을 전개하여 안양-서울-임진강으로 진출하다가 안타깝게도 1951년 4월 14일 경기도 파주지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7638)에 봉안하고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13-ㅎ-051)에 그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